[에세이] 찬 바람이 불면 안부를 물어주세요 by 하정


에세이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남해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3화. 찬 바람이 불면 안부를 물어주세요


글 이하정 그림 김진아


가을을 지나면서  

떠났던 사람이 돌아오고, 남아있던 사람이 떠난다. 어느 날엔 스치고 어느 날에는 스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만의 프로젝트와 일상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는 예전보다 드물게 만난다. 두모가 텅 비어버리는 날도 있다. 그 자연스러움이 좋다. 억지로 모이거나 억지로 놀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느슨한 것이 좋다. 그 편이 진짜의 마음과 더 가깝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마주칠 때마다 시시한 소리를 하고 싶다. 웃기는 소리, 별것 아닌 말. 그건 괜찮게 지내고 있다는 뜻이다. 


추수하는 날 

모두가 일찍 일어나 편한 옷을 갖추어 입었다. 장화를 신거나 운동화를 신고, 낫을 하나씩 손에 들고 논으로 들어간다. 벼를 수확하는 기계인 콤바인이 들어갈 수 없는 가장자리를 낫으로 해결해야 했다. 왼손으로 한 뭉텅이의 벼를 반대 방향으로 눕히면서 오른손으로 낫을 당겨 모가지를 딴다. 손끝에서 낫이 썩, 썩 소리를 냈다. 허리와 다리가 조금 아파질 무렵 콤바인이 등장했다. 콤바인은 추수와 수확을 동시에 해낸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열몇 명의 인간보다 하나의 기계가 월등했다. 하지만 기계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먹는 각종 새참의 즐거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남쪽도 춥다

두모는 산 밑으로 오목하게 자리하면서 바다를 끼고 있어 바람이 많이 분다. 밤이면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꽤 춥다. 주방과 화장실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고 공용 샤워실은 지나치게 넓다. 손발이 자꾸만 차가워진다. 방을 같이 쓰는 진아에게 너무 추워, 나 그냥 죽을래, 같은 말들을 한다. 하지만 진짜 죽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매해 겨울을 죽을 만큼 떨면서 지나 보내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처럼. 가을까지도 화장실에 나타나던 개구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두모에도 겨울이 올 것이다. 밭마다 시금치가 푸릇하다.




다음 화에서 네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