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by 하정


에세이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남해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4편. 어느덧 연말


글 이하정 그림 김진아 




시골에서 시골로

마무리 여행은 양아 분교 운동장에 드문하게 서 있는 일로 시작되었다. 완전체로 모이는 일이 드물어 남기기 쉽지 않았던 단체 사진을 드디어 찍은 것이다. 그런 뒤에는 차를 나누어 타고 구례에 있는 작은 숙소로 달렸다. 숙소는 산속에 있었고 해가 저문 뒤의 풍경은 두모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고요한 어둠. 대신 이곳엔 팜프라에는 없는 거실이 있다. 보일러를 한껏 올려두고 비치되어 있던 보드게임을 했다. 창문 밖으로 짙어진 겨울밤이 바깥 풍경 대신 거울처럼 실내를 비춘다. 발그레해진 볼로 웃고 떠들며 즐거운 사람들. 시골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연말이 왔다. 



온기를 내려주세요  

학교 안에 있는 공용 샤워실은 넓이가 꽤 커서 처음 들어간 순간의 냉기를 지우기가 쉽지 않다. 뜨거운 물로 한참 샤워를 하고 난 후에야 피어오른 김이 공간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준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실에 갈 때마다 앞서 샤워를 하고 간 누군가가 있기를 속으로 바란다. 문을 열었을 때 뽀얀 김이 머물러 있다면 누군가 미리 샤워실을 쓰면서 데워놓았다는 소리다. 그럴 때 나는 창으로 들어온 볕과 함께 뿌옇게 번져있는 김을 성스러운 신의 현현처럼 바라본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2020년 

추위에 자꾸 무기력해지기만 하던 일요일. 든든하게 차려입고 힘을 내어 방갈로 밖으로 나왔다. 좋아하는 두모의 산책 코스를 걸었다. 언덕 아래로 바다와 노도가 내려다보이는 흙길. 두꺼비 바위를 지나 금산을 마주 보며 걸어가는 학교 뒷길. 잎을 다 떨군 나무에 앉아 남은 열매를 쪼아먹는 새와 구름 없는 상공을 가르고 지나가는 까마귀를 보았다. 루돌프 코처럼 빨갛고 동그란 술이 달린 모자를 쓴 할머니가 시금치를 캔다. 그 뒤로는 귀도리를 한 할아버지가 트랙터에 포대를 싣고 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니 돌아서 환히 웃어 보이셨다. 환대의 얼굴이 석양에 노랗게 빛난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2020년. 외지인을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준 두모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풍경들. 감사합니다.